조선시대 봄 그림, 복사꽃
조선시대에는 우리나라의 봄은 벚꽃보다는 복사꽃이 만발했었다. 일제가 우리나라에 벚꽃을 심기 시작해서 지금은 벚꽃을 흔히 볼 수 있다. 봄 하면 복사꽃(복숭아꽃)을 빼놓을 수 없어서 조선시대 작품을 찾아보았다.

포동춘지도
포동의 봄 연못이란 제목이 붙어있는 이 그림은 복사꽃 아래 술을 마시고 시를 지으면서 꽃놀이를 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이유신
자는 사윤(士潤), 호는 석당(石塘). 가계와 행적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1753년(영조 29) 종묘제사에 궁위령(宮闈令)으로서 참여하였고 그 공으로 품계가 승진되었다고 한다. 유재건(劉在建)의 "이향견문록(里鄕見聞錄)"에는 그가 그림을 잘 그렸고 돌을 좋아하는 성품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어느 해 정초에 신위(申緯)의 집에 세배를 갔다가 그곳에서 돌을 얻고 기뻐하였는데 그 때 이미 백발의 노인이었다고 전한다. 이 내용에 의하면 그는 신위보다 나이가 위였지만 신분상으로 낮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문예에 뛰어났으나 신분이 높지 않았던 인물들의 전기를 모은 "이향견문록"에 실렸던 점으로 보아 중인계층의 화원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필운대상춘
필운대는 종로구 필운동에 있는 바위언덕을 말하는데, 인왕산 중턱의 전망대를 의미한다. 선조때 재상을 지낸 이항복의 집터가 있던 곳이고 현재는 배화여고가 세워져있다.
이 그림은 제목처럼 필운대에서 꽃놀이를 하는 선비들의 모습을 그린 것이며,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버드나무와 복사꽃이 만발한 서울풍경이다.
정선
본관은 광주(光州). 자는 원백(元伯), 호는 겸재(謙齋), 겸초(兼艸), 난곡(蘭谷).
아버지는 시익(時翊)이며, 어머니는 밀양 박씨(密陽朴氏)이다. 2남 1녀 중 맏아들이다. 그의 선세(先世)는 전라남도 광산(현 광주광역시), 나주 지방에서 세거한 사대부 집안이었다. 뒤에 경기도 광주로 옮기고, 고조부 연(演) 때 서울 서쪽(西郊)으로 다시 옮겨 살기 시작하였다.

등고상화, 옥계12승첩
그림에 나오는 사람들은 중인계층의 시인들이 만든 ‘옥계’라는 모임의 회원들이다. 버드나무와 복사꽃이 핀 옥계동 산자락에서 꽃놀이 겸 시 모임을 하는 장면을 담은 것이다.
임득명
본관은 회진(會津), 자는 자도(子道), 호는 송월헌(松月軒). 누대에 걸쳐 여항 문인을 배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조부 임성원(林聲遠), 부친 임필창(林必昌)에 이어 그도 시인으로 활약하며 "송월만록(松月漫錄)"이라는 문집을 남겼다.
규장각 서리를 지냈으며 여항 문인들의 시사인 옥계시사(玉溪詩社, 松石園詩社)의 일원으로 활동하였다. 시사에서 함께 활동한 여항 문인 화가 김영면(金永冕)과 교유하면서 화풍에 영향을 주었고, 청나라를 여러 차례 왕래한 옥계시사의 중추적 인물 조수삼(趙秀三)이나 사대부 이광문(李光文)·김조순(金祖淳)과 교유하면서 중국의 서화에 대한 지식을 넓혔다.
회화 활동 또한 중인 시사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는데, 그는 옥계사 결성 때부터 동참하였던 동인으로서 시회를 주제로 한 그림을 다수 제작하였다.
출처: 구글 검색, 한국민족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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