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명절지화 (器皿折枝畵)
기명절지화는 고동기나 도자기에 꽃가지·과일·채소 등을 곁들인 일종의 정물 그림이다. 기명절지도라고도 한다. 중국의 청공도나 박고도에 연원을 둔 것으로, 조선 말기 화가 장승업이 청대 양주와 상해에서 유행하던 개성적인 기명 및 화훼 그림을 수용하여 창안한 새로운 형식의 그림이다. 학식 있는 문인의 품격을 나타내는 고동기, 부귀·장수·다남 등 길상적인 의미를 가진 꽃, 과일, 괴석 등을 함께 그림으로써, 궁중에서 민간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인기를 얻었다. 문인·사대부들의 서화골동취미와 대중들의 기복적·장식적 욕구를 결합시켜 발전시킨 한국 독자의 장르이다. (고동기:구리로 만든 옛날 그릇 또는 청동으로 만든 기물)
기명절지화의 연원은 중국의 박고도와 청공도에서 찾을 수 있다. 박고도는 그릇에 꽂힌 꽃을 그리는 병화도(甁花圖)에서 비롯되었는데 북송대에 고동기와 더불어 옛 도자기, 괴석 등이 더해지면서 박고도의 도상이 정립되었고 독립적인 화목(畵目)으로 발전하였다. 원 · 명대에는 고동기에 꽃과 과일 등 여러 가지 회화적 소재가 결합되면서 상징적 의미가 강조되었다. 명 말기 골동취미가 성행하고 판화기술이 발전하여 문방청완 관련 서적들이 간행되면서 고동기가 그림의 소재로 즐겨 다루어지고 박고도가 활발히 제작되었다.
한편, 명 말기에 진순(陳淳), 서위(徐渭)가 발달시킨 문인화풍의 화훼잡화도(花卉雜花圖)는 화훼 · 소과(蔬果)와 함께 다양한 기물을 그리는 청공도에 영향을 끼쳤다. 청공은 "서재에 놓인 아취 있는 물건"을 의미하며 청공도는 명 말기부터 화제(畵題)로 다루어지기 시작하여 청대에 보편적인 화제로 정착하였다. 청대에는 금석학과 함께 고동기 및 서화의 수장 취미가 유행하였고, 화훼화가 발전하면서 다양한 양식의 박고도와 청공도가 활발히 제작되었다. 특히 건륭연간에는 황실을 중심으로 한 해의 행복을 기원하는 연화(年畵)의 일종인 세조도(歲朝圖)의 대표적인 소재로 박고도와 청공도가 다루어지면서 궁중장식화로 발전하였다.(건륭 : 중국 청나라 고종 때의 연호(1736~1795))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에 송으로부터 "제기도(祭器圖)"를 받았다는 기록이 있으며 일찍부터 병화도나 소과도(蔬果圖)가 그려지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기명절지화가 그려지게 된 데에는 조선 후기에 유입된 청대의 청공도, 박고도, 세조도 등의 영향이 있었다. 조선 후기 강세황이 그린 "청공도"와 "문방구도"는 중국을 통해 청공도가 유입된 사실을 알려준다.
조선 말기 장승업은 청대 양주화파와 해상화파에 의해 개성적으로 그려진 기명과 화훼 그림을 수용하여 기명절지화 양식을 창안했다. 조선 후기의 문인들이 문방구 위주의 그림을 그린 데 반해, 장승업은 고동기에 다양한 소재를 더하고 수묵에 채색을 곁들여서 길상성과 장식성을 강조하였다. 장승업이 창안한 기명절지화는 그의 인기와 더불어 근대 화단에서 크게 유행하였다.
(해상화파 : 1840년대에 중국 상하이를 중심으로 발달한 화파. 전통을 기반으로 외래 예술을 흡수하여 참신하고 개성이 있으며, 그림을 그리고 토론하는 모임을 자주 가졌다.)
기명절지화라는 명칭은 각종 그릇과 화초를 그린 그림을 의미하지만, 실제로 기명절지화에 그려진 소재는 각종 과일과 야채, 게와 조개, 붓과 벼루 등 매우 다양하였다. 중국의 영향을 받은 청공도, 박고도, 화훼도, 소과도 등을 기명절지화라는 독립적인 화목으로 발전시킨 화가는 장승업이었다.
화가이자 미술사학자인 김용준은 "오원일사(吾園軼事)"에서 “그때까지 기명과 절지는 별로 그리는 화가가 없었던 것인데, 조선 화계에 절지, 기완 등 유(類)를 전문으로 보급시켜 놓은 것도 오원이 비롯하였다.”라고 하였다. 장승업은 자신을 후원하였던 오경연(吳慶然)의 집을 드나들며 중국의 여러 그림을 소화하여 기명절지를 하나의 유형으로 창안하여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장승업은 중국의 양주화파나 해상화파 화가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지만, 자유분방하고 대담한 필치, 지그재그로 기물이 가득 찬 구도, 생동감이 넘치는 필묵의 미 등은 장승업만의 특징이다.
기명절지화는 안중식과 조석진을 거치며 20세기 초 한국 화단에서 크게 유행하였다. 안중식은 섬세한 필치, 단정한 구성, 감각적인 채색을 사용하여 세련된 화풍의 기명절지화를 발전시켰다. 안중식이 발전시킨 공필채색화풍의 기명절지화는 궁중회화로도 제작되면서 후대의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지만 점차 형식화되는 경향도 나타났다.
이도영은 중국의 고동기 대신 신라 토기와 고려 청자 등을 그려서 한국적인 그림으로의 변모를 꾀하였다. 이도영은 안중식의 공필채색화풍의 기명절지화에 비해 여유로운 구성, 담백한 색채를 구사하여 문아(文雅)한 분위기의 기명절지화를 그렸으며, 고동기에 사군자가 곁들여진 수묵화풍의 기명절지화도 그렸다. 사군자가 곁들여진 문인화풍의 기명절지화는 사군자 화가들 사이에서도 활발히 제작되었으며 시회(詩會)나 아회(雅會) 등에서 여러 명의 화가들이 함께 그리는 합작품으로도 제작되었다.
기명절지화는 문인, 사대부들의 서화골동취미와 대중들의 기복적, 장식적 욕구가 결합되어 인기 있는 장르로 발전하였다는 점, 그리고 중국의 청공도와 박고도에 연원을 두면서도 한국적인 특색을 갖춘 독자적인 장르로 발전하였다는 점에서 미술사적인 의의가 있다.
소정 변관식(小亭 卞寬植, 1899~1976)은 1917년 서화미술원(書畵美術院)에 입학하면서 그림 수업이 본격화되었다. 1945년 광복 이후 대한민국미술전람회(약칭 국전)에 관여하고 심사 위원을 역임한 적도 있으나 1957년부터는 재야 화가로서 화업에만 몰두하며 보냈다. 이 작품은 다양한 고동기(古銅器)와 생물이 계절감을 살려 함께 어우러져 있다. 기명절지도는 진귀한 청동기, 꽃병, 화분 등의 그릇이나 문방구를 꽃과 과일, 채소 등과 어울리게 배치하여 복과 장수, 편안함 등을 추구하는 길상화의 일종이다. 입체감을 살린 사실적인 묘사와 명암법을 구사하고 화려한 채색을 강조하였다. 또한 세로로 긴 화면에 맞게 기명과 꽃, 과일 등을 적절하게 배치하여 세련된 공간을 구성하였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ncykorea.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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