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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화, 서화에 대한 모든것

헤엄치는 오리, 서화, 영모도, 조선시대 그림

by 소소한그날 2025. 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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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엄치는 오리,조선,지,작가 김양기,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헤엄치는 오리(遊鴨, 金良驥 筆 鴨遊圖, 김양기 필 압유도, 물에서 노니는 한 쌍의 오리)

김양기(字 千里, 號 肯園·浪谷)는 김홍도의 아들로, 조희룡과 교류관계가 있었다는 행적 외에는 알려진 바가 없으며 공개된 작품 또한 드물다. 그 동안 공개된 산수화나 영모화를 보면 아버지의 화풍과 비슷하고, 아버지가 워낙 유명한 화가였던 탓인지 그 그늘 아래서 벗어나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물에서 노니는 오리는 그림의 소재로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그려졌다. 오리나 원앙과 같은 물새류는 고려청자 문양에서 확인된다. 조선 초에도 그림으로 그려졌고 조선 중기 화단에서는 이징(李澄)의 사계영모도(四季翎毛圖)에서도 보인다. 특히 김홍도는 산수를 배경으로 그린 명품을 나겼으며 조선 말기에도 이러한 전통은 꾸준히 이어졌다.
이 그림에서는 화면 중앙에 비스듬히 흐르는 시내가 있고 암수 한 쌍의 오리가 노닐고 있는 모습을 비교적 크게 나타냈다. 배경이 되는 바위는 좌우로 나뉘어 있어 바위 사이를 유유히 헤엄쳐 가는 오리의 모습이 잘 포착되어 있다. 오른쪽 상단에는 연분홍 꽃이 핀 복숭아나 무를 곁들여서 따사로운 봄날의 물가 풍경과 오리 부부의 정겨움이 잘 나타나 있다.

필자미상 유압도, 조선, 지, 출처:국립중앙박물관
기러기와 오리, 조선, 지, 작가 김후신, 출처:국립중앙박물관

옛 문헌에 따르면 우리말로 오리 · 올이 · 올히로 불렸으며, 한자로 압(鴨)이라 하였다. 압은 집오리, 부(鳧)는 물오리라고도 하였다. 압은 서부(舒鳧) · 가부(家鳧) · 말필(𩿣鴄) · 목(鶩)이라고도 하였고, 부는 야압(野鴨) · 야목(野鶩) · 침부(沈鳧)라고도 하였다. "오주연문장전산고" 속의 아압변증설(鵝鴨辨證說)에는 “오리[鴨]에도 역시 몇 가지 종류가 있는데, 집에서 기르는 것도 있고, 야생인 것도 있다.”고 하였으니 오리를 넓은 의미로 쓴 예이다.

집오리는 원래 야생인 청둥오리를 중국에서 가금화(家禽化:집에서 기르는 날짐승으로 바꿈)한 것인데, 이집트에서는 기원전 2000년경의 기록이 있다고 한다. "오주연문장전산고"에 따르면 신라와 고려에도 오리가 있었고, 일본에는 3세기에 오리가 전래된 것 같다고 하니 우리 조상들은 이보다 훨씬 전부터 오리를 기르기 시작하였을 것이다.

"오주연문장전산고"에는 또한 고려의 싸움오리[高麗鬪鴨]이야기도 있다. "재물보"에는 집오리의 수컷은 머리가 녹색이고 날개에는 무늬가 있으며 암컷은 누렇고 얼룩진 색이라 하고, 물오리는 집오리와 비슷하나 이보다 작고, 청(靑)과 백이 섞인 색이고, 부리는 짧고, 다리는 작다고 하였다. "재물보"와 "물명고"에는 집오리와 물오리 이외에 계칙(鸂鷘:비오리) · 벽제(鷿鵜:되강오리) · 원앙(鴛鴦, 元央)도 기록되어 있다.

"지봉유설"에는 닭과 오리는 가축이어서 잘 날 수 없고, 그 밖에 들에서 사는 새들은 모두 잘 날 수 있다는 송나라 왕규(王逵)의 말이 인용되어 있고, “내가 집오리를 보건대, 이것을 들의 물에서 오래 놓아 기르면 멀리 잘 날 수 있다. 아마도 가축이 잘 날 수 없는 것은 마시고 쪼아 먹는 것이 깨끗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라 하였다.

"전어지'에는 여러 가지 문헌을 인용하여 집오리를 기르는 법을 비교적 상세하게 기록하였다. "규합총서"의 산가락(山家樂)에는 집오리의 알 안기와 새끼를 기를 때의 주의해야 할 일이, 청낭결(靑囊訣)에는 “오리고기와 알을 먹으면 아기를 거꾸로 낳고 심한(心寒)하고, 오리알 삶을 제 귤 뿌리를 넣으면 붉어진다. 달걀과 오리알에 쇠똥물로 그림을 그려 삶으면 푸른 것이 속까지 박힌다.” 등의 기록이 있다.

"동의보감"의 탕액편에는 집오리의 기름, 피, 머리, 알, 흰오리고기, 흰오리똥, 검은오리고기의 성질과 약효를 적었다. 또 들오리의 고기는 “성이 양(凉)하고 독이 없다. 보중(補中) 익기(益氣)하고 위기(胃氣)를 화(和)하고 열 · 독 · 풍 및 악창절(惡瘡節)을 다스리며 배 내장의 모든 충(虫)을 죽인다. 9월 후 입춘 전까지 잡은 것은 크게 보익하며 집오리보다 훨씬 좋다. 그리고 조그마한 종류가 있는데 이것을 도압(刀鴨)이라 하며 맛이 가장 좋고 이것을 먹으면 보허(補虛)한다.”고 하였다.

 

오주연문장전산고

"오주연문장전산고"는 조선 후기 실학자 이규경이 조선과 청나라의 여러 책들의 내용을 정리하여 편찬한 사전이다. 서두에 이규경의 서문이 있다. 권1에서 권60에까지 총 1,417항목으로 구성되었다. 모든 항목을 변증설로 처리해 고증학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학문적 입장을 밝히고 있다. 또 역사·천문·지리·불교·서학·병법·광물·초목 등에 관한 내용을 망라하였다. 이처럼 방대한 항목을 다룰 수 있었던 것은 청나라와 서양학문의 수용이 큰 역할을 하였다. "오주연문장전산고"는 조선 시대 백과사전을 대표하는 책으로 "지봉유설" 등의 흐름을 계승하였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뮤지엄(전국박물관소장품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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