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군자 화목(畵目)은 우리나라에서 선비들의 그림, 즉 문인화의 주된 소재로 크게 유행했다. 비록 현존하는 예는 드물지만 일본 오구라 다케노스케[小倉武之助] 소장의 청자상감포류수금문판(靑磁象嵌蒲柳水禽文板) 등 고려청자의 문양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사군자는 고려시대부터 그려졌다.
매화와 대나무의 조선적인 정형은 조선 중기 화단에 이르러 형성된 것으로, 어몽룡(魚夢龍)이나 허목(許穆), 오달진(吳達晋), 오달제(吳達濟) 등의 유작을 통해서 17세기 묵매의 특징을 엿볼 수 있다. 대련(對聯) 및 전체가 이어진 병풍류도 그려졌으리라 여겨진다.
19세기에 이르면 현존 작품에서 알 수 있듯이 여러 폭으로 된 대작 병풍의 매화 그림들이 다수 전래된다. 그리고 선비만이 아닌 유숙(劉淑), 장승업(張承業)과 같은 화원들의 그림들도 찾아볼 수 있는데, 당시 수요를 반영하는 것이다. 김정희(金正喜)의 제사(題辭)가 들어가 있는 "홍백매병(紅白梅屛)" (개인 소장)을 비롯해 조희룡(趙熙龍)도 여러 점의 매화도 병풍을 남기고 있다. 개인 소장의 10폭 "묵매병(墨梅屛)",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8폭 "홍백매병"등은 긴 제사를 곁들인 명품(名品)들이다.
"유숙필 매화도"는 모두 8폭으로 된 홍백매병으로, 괴량감은 약하나 괴석 위로 전체가 이어진 고매(古梅)를 나타냈다. 15행(行)에 걸친 화가 자신이 쓴 제사와 간기 ‘戊辰(술신)’에 의해 유숙이 42세 때인 1868년 하지에 그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이를 통해 그의 문재(文才) 및 서필(書筆)을 알 수 있다. 나아가 이 그림은 유숙이 장승업의 스승이라는 속설에 대해 긍정적인 의미를 시사한다.
이와 같은 계열의 대작은 앞에서 언급한 조희룡, 그리고 허유(許維), 유숙, 장승업, 그리고 양기훈(楊基薰)의「홍매도(紅梅圖)」(평양 조선미술박물관 소장) 등 일관된 흐름과 유형을 엿볼 수 있다.

어몽룡(魚夢龍, 1566-1617)은 조선 중기의 선비화가로서 본관은 함종(咸從), 자는 견보(見甫), 호는 설곡(雪谷) 또는 설천(雪川)이다. 판서 어계선(魚季瑄)의 손자이며, 군수 어운해(魚雲海)의 아들이다. 채색을 사용하지 않고 먹으로 그리는 매화 그림을 잘 그린 어몽룡은 대나무 그림에 뛰어난 이정(李霆)과 포도를 잘 그린 황집중(黃執中)과 함께 당시 삼절(三?)로 불렸다. 중국인 양호(楊鎬)도 그의 묵매도를 보고 그림의 품격이 대단히 좋다고 하였으며, 다만 거꾸로 드리운 모습이 없어 유감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그의 묵매화는 굵은 줄기가 곧게 솟아나는 간소한 구도와 단출한 형태, 고담한 분위기 등을 특징으로 한다. 이러한 그의 화풍은 조속(趙涑)과 오달제(吳達濟), 허목(許穆), 조지운(趙之耘) 등의 묵매화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이 <묵매도>는 중앙 집중적이며 수직성이 강조된 구도를 보여 주고 있다. 그림 전체에 걸쳐 먹색은 중간 정도의 빛을 띠고 있다. 그리고 붓을 마르게 하여 붓자국에 흰 공간이 표현되는 비백법(飛白法)을 많이 구사하여 시원하고도 힘있는 필치를 보인다. 매화꽃의 꽃술이나 붓으로 찍은 나뭇가지의 태점(苔點)은 짙은 먹을 사용해 각각 끊어지는 방식으로 찍어 화면에 동적인 요소를 불어넣어 주고 있다.


1846년 헌종어진도사(憲宗御眞圖寫)의 주관화사(主管畵師)로 활약하였으며, 1852년 철종어진도사에, 1861년 철종어진 원유관본도사(遠遊冠本圖寫)에, 그리고 1872년 고종어진도사에 참여하였다. 이러한 초상(肖像) 실력 때문에 조중묵(趙重默)과 더불어 당시 초상화의 쌍벽으로 지칭되었다. 운현궁 소장의 이하응(李昰應) 초상 다섯 점은 그의 초상화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그는 전기(田琦), 김수철(金秀哲), 허유(許維), 유숙(劉淑), 조중묵, 유재소(劉在韶) 등과 함께 김정희(金正喜)의 화평(畵評)을 통하여 그림 지도를 받기도 하였다. 그의 그림에 대하여 김정희는 “비록 출진(出塵)의 상(想)이 모자라나 선명하여 풍치가 있다”고 하였으며 또 “묵법(墨法)이 몸에 익어 있다”고 하였다.
현존하는 작품들은 산수, 인물, 화조(花鳥), 절지(折枝) 등 다방면에 걸쳐 있는데, 대체로 전형적인 남종화법(南宗畵法)과 김홍도(金弘道)의 화풍을 따르고 있다. 바위, 인물, 나무의 묘사에서 특히 김홍도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부드럽고 투명한 필치의 사용, 묵법의 강약, 농담(濃淡)의 사용 등에서는 그의 탁월한 재능을 엿볼 수 있다.
대표작으로는 1971년 보물로 지정된 「김정희영정」(1857, 국립중앙박물관 보관), 「방화수류도(訪華隨柳圖)」, 「매화서옥도(梅花書屋圖)」, 「의암관수도(倚巖觀水圖)」(이상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추림독서도(秋林讀書圖)」(간송미술관 소장), 「이유원상(李裕元像)」(개인소장) 등이 있다.

상단에 그의 현손玄孫인 오언유吳彦儒가 쓴 숙종(재위 1674~1720년)과 영조(재위 1725~1776년)의 어제시御製詩가 있다. 매화는 약간 진한 담묵에 몰골沒骨로 그려 기교를 나타내지 않았으나 능숙한 필력으로 활달하게 획을 그어 서릿발 같은 기백이 역력하다.

오달제吳達濟(1609~1637)는 조선 중기의 문인화가이다. 그의 본관은 해주이고 자는 계휘季輝, 호는 추담秋潭, 시호는 충렬忠烈이다. 19세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26세에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성균관 전적을 시작으로 병조좌랑, 시강원 사서, 사간원 정언, 사헌부 지평, 홍문관 수찬을 거쳤다. 병자호란 때 청과의 화의를 끝까지 반대하다 청나라에 잡혀가서 윤집尹集, 홍익한洪翼漢과 함께 29세의 젊은 나이로 무참히 죽음을 당한 세칭 삼학사 중의 한 사람이다.
오달제의 <설매도>는 설중풍상雪中風霜 속에서 꽃망울이 맺혀있고, 매화에 바위와 대나무까지 곁들임으로써 강인성을 한층 부각시킨 작품이다. 늙고 단단한 매화등걸이 화면의 왼쪽 아래에서 오른쪽 위로 옹이진 채 나있고, 그 끝에서 다시 작은 줄기가 솟아올랐으며 늙은 등걸 밑에서 또다시 가지가 휘어져 나있다. 매화와 대나무가 횡간식橫幹式으로 뻗어 나온 구성은 당시 다른 화가들의 매화도에서도 흔히 볼 수 있지만, 이처럼 눈이 쌓인 줄기를 입체감 있게 표현한 예는 많지 않다. 눈 덮인 줄기는 명암효과를 주는 듯 섬세한 붓질을 반복하여 입체감이 느껴진다. 간결한 꽃모양이나 섬세한 묵법 등은 조선 중기 매화도의 특징을 보이지만 가지의 구성이 자연스럽고 꽃 또한 가는 꽃술이 모여 있어 어몽룡이나 조지운의 매화도에서 보이는 17세기 매화도의 일반적인 특징과는 차이가 있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 많은 작품을 남기고 있지는 않으나, 오달제의 기백을 쏟아낸 듯 기운 찬 매화도는 그의 필력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한 마리의 새가 매화가지에 앉아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떨군 채 졸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이처럼 새가 매화가지에 앉아 있는 그림은 조선 중기 17세기 이래로 자주 그려졌다. 조속(趙涑)과 조지운(趙之耘) 부자가 그렸다고 전해지는 작품들이 여러 점 알려져 있다. 채색을 사용하지 않고 수묵으로만 그리고 배경의 식물과 새들의 비중을 같이 둔 절지영모화(折枝翎毛畵)는 17세기의 문인화가 사이에서 크게 유행하였다.
매화가 아닌 대나무나 다른 종류의 나무 위에서 졸고 있는 새의 그림도 많이 그려졌다. 이 그림에서도 대나무의 줄기는 보이지 않으나 엷은 먹으로 대나무 잎이 표현되어 있어서 실제로 대나무와 매화를 모두 등장한다. 이 그림과 같이 봄을 배경으로 하지 않고 가을이나 겨울을 배경으로 졸고 있는 새 그림도 전해진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뮤지엄(전국박물관소장품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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