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초는 사군자의 하나로 예로부터 시와 그림의 소재로 많이 등장하고 있다. 문인화로서 묵란화가 우리 나라에 도입된 것은 우리 나라에서 난이 재배되기 시작한 고려 말기로 추정되는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작품으로는 조선 초 강세황(姜世晃)의 "필란도(筆蘭圖)"가 있다.
이 밖에 김정희 · 이하응(李昰應) · 김응원(金應元) · 민영익(閔泳翊) 등은 묵란화의 대가들이다. 난시를 남긴 이로는 김부식 · 김극기 · 이규보 · 정몽주 · 정도전(鄭道傳) · 권근(權近) · 이숭인(李崇仁) · 최경창(崔慶昌) · 신위(申緯) 등이 있다.
난초는 또한 자손의 번창과 관련 있는 것으로 이해되어 경기도지방에서는 난초꽃이 번창하면 그 집에 식구가 는다는 속신이 전하여진다. 충청북도지방에는 꿈에 난초가 대나무 위에 나면 자손이 번창하고 난초꽃이 피면 미인을 낳는다는 속신이 전하여진다.
난초와 관련되는 속담으로는 ‘난초 불 붙으니 혜초 탄식한다.’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동류(同類)의 괴로움과 슬픔을 같이한다는 뜻이다



영조(英祖)의 현손(玄孫)이며 고종(高宗)의 생부(生父)인 이하응은 주지되듯 조선말 활동이 두드러진 대정치가이다. 아울러 그림과 글씨에도 능해 큰 명성을 얻었다. 조선말 문인화가로 화단에서도 어엿한 위치를 점해 회화사의 측면에서도 주목된다. 김정희(金正喜, 1786∼1856)의 문인으로 추사체(秋史體)를 바탕으로 독특한 서체(書體)를 이룩하였고, 그림은 묵란(墨蘭)에 있어 독자적인 화경(畵境)에 도달하였다. 성가(聲價)에 걸맞게 전래작(傳來作)은 상당수에 이른다. 이 중에는 제발(題跋)이나 관인(款印)들이 선명한 그림들도 적지 않다. '신사(辛巳, 1881)', '정해(丁亥, 1887)', '임진(壬辰, 1892)' 등의 간기(刊紀)나 '노석(老石)', '석파노인(石坡老人)' 등 관서(款署) 등에 의해 60세 이후 그림임을 알려주는 것들도 있다. 화첩(畵帖)에 속한 편화(片畵), 대련(對聯), 여러 폭으로 된 대작병풍(大作屛風) 등 다양한 크기와 형태들인데 전칭작(傳稱作) 중에는 심지어 이금(泥金)으로 그린 것도 있다. 이들은 필치(筆致) 및 격조(格調), 화풍에 있어서 차이를 보이곤 한다. 그러나 신빙성에 문제가 있어 대부분 대작(代作)이나 방작(倣作)으로 사료된다. 실제로 방윤명(方允明, 1827∼1880)이나 김응원(金應元, 1855∼1921)이 대필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석파란(石坡蘭)'이란 용어가 시사하듯 그는 묵란 부분에서 독보적인 바 조선 말기 화단에서 민영익(閔泳翊, 1860∼1914)과 더불어 병칭(竝稱)된다. 일찍이 추사(秋史)도 그에게 보내온 난폭(蘭幅)에 대한 회신에서 '압록강 동쪽에 비교할 작품이 없다(鴨水以東無如此作)'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현상태가 몹시 양호한 이 "묵란도" 대련(對聯)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으로 외산(外山)이란 사람에게 임진(1892)년에 그려준 것으로 되어 있는 것과 화면폭은 같으나 길이가 조금 긴 "석란도(石蘭圖)"와 화풍상 친연성이 커서 비교의 대상이 된다. 각기 양쪽 면에 무게의 중심을 두어 대칭구도를 이루었고, 중앙에 바위를 포치시키고 상하로 두 무더기의 난초를 그린 점, 꽃과 잎을 농담(農談)을 달리 나타낸 점, 필치의 동일성 등에서 공통점이 다른 어떤 그림보다 크다 하겠다. 간기(刊紀)가 나타나 있는 석파난 중에서 가장 말년작(末年作)으로, 정유(丁酉)는 바로 타계 1년 전인 1897년이다. 한가지 특이한 점은 일본 정치가 신편지상(神鞭知常, 1848∼1905)에게 그려준 사실로, 양자 사이의 교류를 시사하는 점에서도 중시된다. 앞서 언급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석란도"의 외산도 일본인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 그림은 신사(辛巳, 1881) 간기(刊紀)가 있고, 정인보(鄭寅普)선생의 긴 제발(題跋)이 있는 신빙성이 높은 개인소장의 대련(對聯)과는 화풍상 차이가 두드러진다. 이를 시차(時差)에 의한 화풍의 변화로 이해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김응원(號 小湖)은 글씨에 뛰어나 행서와 예서를 특히 잘 썼으며 묵란(墨蘭)을 전문으로 그렸다. 그의 난법(蘭法)은 김정희(金正喜)와 이하응(李昰應)의 필의를 뒤 따르는 청아한 필선과 기품을 특징으로 한다. 그러나 난 잎의 첨예하면서도 남성적인 힘찬 동세는 활달한 필체와 어우러져 그만의 독자적인 경지를 이룬다.
이 그림은 흔히 보게 되는 김응원의 전형적인 난초 그림 중 하나지만, 화면 구성의 명쾌함과 필치의 즉흥적 생동감이 한결 두드러지게 발휘된 가작(佳作)이다. 이 그림은 왼쪽에 깎아지는 암벽을 농묵으로 배치하고 그 중단에서 화면을 가로지르며 뻗어있는 난 잎을 묘사하였다. 절도 있게 굴절된 난 잎 사이로는 담묵의 섬세한 꽃대를 적절히 구사하여 강약을 주었으며 화면 오른쪽 상단에는 행초체로 긴 내용의 제발을 적어 넣었다. 화면 아래 부분에는 낮은 언덕 위에 진한 농묵으로 잎 짧은 난을 그려 넣어 균형과 조화를 꾀하고 있다. 제발에는 청나라 서화가 정판교(鄭板橋, 1693~1765)의 필의를 모방한다고 밝히고 있어서 김응원이 그의 묵란법의 영향을 받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가작(佳作) : 예술 작품 따위의 대회에서, 당선작은 아니지만 작품성이 뛰어나다고 평가된 작품)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뮤지엄(전국박물관소장품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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