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견사호(鷄犬獅虎) 1탄, 닭
민화가 발전·전래하기 시작한 조선 후기의 우리 선조들은 오랫동안 복 많이 받아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이 가장 큰 소원이었다. 그리고 민화 중 에서는 토속적인 종교와 결합한 풍습에 의해 주술적인 의미가 부여된 것들이 있다. 이를 세화(歲畵)라 하며 일상생활 속의 풍속이 되었다. 만백 성들이 우러러보는 궁중은 물론이고 사대부들의 저택, 일반 서민들의 집에서 입춘방처럼 축귀(逐鬼)나 구복(求福)의 상징으로 그린 세화를 정 월 초하룻날 대문 또는 집안에 걸거나 붙였다. 세화 속에는 다양한 동물들이 등장한다. 세화 속에 등장하는 동물은 크게 두 분류로 나누어지는데, ‘영적인 힘을 지닌 동물 그림을 집에 둠으로써 잡귀를 물리칠 수 있다’고 믿는 벽사적 동물과, 수백 년 이상 오래 살 수 있는 동물들이 등장 하는 십장생의 동물로 나눌 수 있다. 닭, 개, 사자, 호랑이가 함께 그려진 <계견사호(鷄犬獅虎)>는 집을 지켰던 그림의 대표이다. 조선 후기 저명한 학자인 사옹( .翁) 홍성모(洪錫謨, 1781-1857)는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서 “정초 세화로 계견사호(鷄犬獅虎)를 그려 붙였다.”고 하였다.
닭, 나쁜 것은 쫓고 좋은 일은 불러오는 길상의 상징
옛사람들은 닭이 울면 어둠이 걷히고 여러 잡귀가 물러간다 고 믿었기 때문에 민속 신앙에서 닭은 상서롭고 신비로운 길조 로 보았다. 닭은 주역(周易)의 팔괘 가운데 남동쪽을 의미하는 ‘손(巽)’괘에 해당하는 동물인데, 동쪽은 해가 뜨는 방향이므로, 어둠을 몰아내고 여명(黎明)이 시작되는 것을 신비한 닭이 담당한다고 믿었다.
암석과 난초를 배경으로 한 쌍의 닭이 그려짐.
오동나무와 닭을 그린 그림이다. 그림의 한쪽에 오동나무를 크게 그리고, 그 밑으로 병아리 5마리와 닭 한 쌍을 배치하였다. 어미 닭이 병아리 한 마리에게 먹이를 주는 모습이 표현되었고, 오동나무 뒷편으로는 구름 사이로 해를 표현했다.
홍석모의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나오는 내용을 보면 “(설 전날) 귀신이 민가에 내려와 아이들의 신을 신어보고 발에 맞으 면 신고 가버리지만 닭이 울어 날이 밝으면 도망가 버린다.”라고 적혀있어 귀신을 물리치는 능력을 지닌 닭의 습성을 확인할수 있다. 민화에서 볼 수 있는 닭 그림에는 현실의 재앙을 막고 소원하는 바를 이루려는 마음인 벽사(僻邪)·길상(吉祥)의 의미를 비롯해 다양한 뜻을 담고 있는 작품이 많다.
그중에서도 닭이 한 마리만 등장하는 그림은 벽사를 목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닭 그림은 전통적으로 호랑이 그림과 함께 정초에 벽사, 초복의 뜻을 담아 대문이나 집안에 붙였던 세화의 일 종으로 직접 그리거나 목판으로찍어서 사용하였다. 수탉이 울면 동이 트고, 동이 트면 광명을 두려워하는 잡귀가 모두 도망친다 는 생각에 어느 가축보다 소중히 여겼다. 또한, 수탉의 붉은 볏은 그 이름이나 생김새가 ‘벼슬’과 통하므 로 벼슬을 얻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 입신출세와 부귀공명을 상징하기에 학문과 벼슬에 뜻을 둔 사람은 귀천을 막론하고 닭그림을 붙였다. 수탉이 한 마리만 목을 쳐들고 우는 모습이 등장 하는 그림은 ‘공을 세워 이름을 떨친다’는 의미에서 ‘공명도(功 名圖)’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러한 이유는 ‘공계명(公鷄鳴)’을 줄 인 ‘공명(公鳴)’이 부귀공명의 ‘공명(功名)’과 발음이 같은 점에서 유래했다.
여기에 덧붙여 암탉은 매일 알을 낳으므로 자손의 번창을 상징 하기도 하였다. 조선 숙종대의 화가 변상벽(卞相璧)이 그린 닭 그림인 <모계영자도(母鷄領子圖)> 보면 어미닭과 함께 여러 마리 의 병아리가 노니는 모습을 그렸는데, 오복의 하나인 자손 번창 을 염원하는 뜻을 담고 있다.
출처 : 국가유산진흥원 koreahouse.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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