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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화 속 화조도, 화조화 화조화(花鳥畵),화조도(花鳥圖)화조도는 본래 감상화에서 출발하였으나 꽃과 새들의 평화롭고 아름다운 세계를 장식화로 발전시켜 신혼부부의 방이나 부인들의 방을 장식하는데 주로 이용되었다. 꽃, 나무, 풀, 새, 괴석 등으로 구성되는 화조도는 부부금술의 대표적 상징인 원앙을 비롯한 각종 새와 동물은 항상 쌍으로 표현하고, 나비는 꽃과 함께 쌍을 이루기도 한다. 이 병풍은 세련된 도안과 화려하면서도 차분한 색상이 돋보여 궁중의 권위나 사대부집안의 문인취향까지 느낄 수 있는 수작이다.꽃·나무·새 등을 그린 그림. 지본채색(紙本彩色). 8폭 병풍(세로 149, 가로 448). 각 화면에는 소나무와 학 2마리, 꽃과 꿩·오리, 모란과 새, 국화와 새, 연꽃과 원앙, 매화와 새, 모란과 새, 오동나무와 봉황 등이 차례.. 2024. 12. 20.
민화 속 노안도 (蘆雁圖)갈대와 기러기 노안도 (蘆雁圖) 갈대와 기러기를 함께 그린 그림. 기러기는 동양의 옛 산수화에 있어 가을 경치를 대표하여 ‘소상팔경도’ 가운데 ‘평사낙안(平沙落雁)’이 포함되기도 한다. 노안도(蘆雁圖)의 노안을 노안(老安)과 같은 의미로 여겨 노후의 안락함을 기원하는 그림으로도 그렸다.중국의 옛 그림을 살피면 가을 정취임에는 틀림없으나 갈대 외에 조락한 연잎이나 꺾인 부들을 나타내기도 했고, 때로는 명(明)의 여기(呂紀)의 예처럼 부용이나 들국화 등을 함께 그린 다소 장식적인 그림들도 남아 있다. 송(宋)나라 때부터 기러기가 화면에 나타났는데 이는 현존 화적이나, 문헌에 나타나 있는 작품명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그림을 유형별로 살펴보면, 갈대숲을 배경으로 한 마리만 등장시킨 것, 쌍으로 나타낸 것, 한 가족인 양 .. 2024. 12. 16.
민화 속 화접도(花蝶圖)꽃과 나비 화접도(花蝶圖)화접도는 꽃과 나비를 그린 그림을 말한다. 집 안팎을 아름답게 꾸미기 위한 장식용 민화에 속한다. 민화 속의 나비는 총각을 상징하고, 꽃은 처녀를 상징하며 나비 한쌍은 남녀 한쌍으로 비유된다. 활짝 핀 꽃과 꽃잎을 배경으로 나비가 노니는 모습을 그린 화접도는 꽃과 나비가 어우러지듯 기쁨, 사랑, 영화, 부부의 화합을 소망하는 그림이다. 출처 :  e뮤지엄(전국박물관소장품검색)내용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024. 12. 13.
민화 속 바다 생물(어해도) 거북이 물고기 골뚜기 오징어 게 소라 ... 어해도에 대해 전에 한번 올렸었는데, 다양한 민화 그림을 위해 다시 한번 언급 뒤 올려본다.어해도(魚蟹圖)어해도는 단일 종류의 물고기인 쏘가리, 잉어가 바닷속에서 유영하는 모습을 게, 새우 등 바다 생물과 함께 그린 유형이 있고, 수많은 물고기가 유영하는 모습을 그린 유형도 있다.송대 어도, 해도, 어해도가 별도로 존재했던 것과 달리 고려시대와 조선 전‧중기까지 어해도는 정립되지 않았고 어도와 해도가 별도로 그려졌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던 것이 18세기 이후에 물고기와 게가 함께 등장하는 어해도가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또한 이 시기는 대량의 물고기와 게를 그리기 위해 족자, 화첩뿐 아니라 병풍으로 많이 제작되었는데 8폭, 10폭이 일반적이었다. 이들 작품은 모두 치밀한 사생을 바탕으로 사실적으로 표현되었.. 2024. 12. 11.
불멸의 화가 반 고흐(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고흐 전시를 하면 늘 갔었는데, 날이 추워지니 주춤거리게 된다. 하지만 추위를 무릅쓰고 갈만한 전시이므로 곧 갈 예정이다.예술의 전당에서 전시를 많이 하니까 자주 가게 되는데, 고흐 전시 역시 이곳에서 하고 있다.사이트에 올려진 내용을 보고 가는게 도움이 될 거 같아서 올려 본다.  출처 : 예술의 전당https://www.sac.or.kr/site/main/show/show_view?SN=65940 2024. 12. 5.
민화 속 혁필화 (革筆畵) 가죽이나 질긴 천에 여러가지 색의 안료를 묻혀서 그리는 그림이며, 혁필화는 근래와 와서 부르는 이름이고, 본래 이름은 비백서(飛白書)라 했다. 비백서는 원래 비로 쓴 자국처럼 희끗희끗하게 붓자국이 드러난 글씨체를 가리킨다. 붓끝이 잘게 갈라지고 필세가 비동(飛動)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비백은 중국 동한시대 유명한 학자이자 서예가인 채옹(蔡邕)이 창조했다고 한다. 한(漢)·위(魏)시대 궁전의 제액(題額)에 이 서체를 사용했고, 후한(後漢) 때에는 장지(張芝)가 일필서(一筆書)의 비백을 썼다. 위나라의 위탄(韋誕), 진(晉)나라의 위항(衛恒), 왕희지(王羲之), 왕헌지(王獻之) 등도 모두 비백체의 명수였고, 당태종이나 송휘종도 비백서에 능했다고 한다. 그만큼 중국에서 비백서는 궁중을 비롯한 상류계층에.. 2024. 1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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